레베카
지금 어디 있든
멈출 수 없는 심장 소리 들려와
바람이 부르는 그노래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멘덜리로-
공연을 본 후 일주일 넘게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넘버들.
그만큼 곡의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고, 배우들의 가창력과 실력이 보증된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었다.
레베카, 하면 공연을 안 본 사람들도 '옥주현?' 하고 말할 만큼 그녀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뮤지컬.
나 역시도 그 뮤지컬에 옥주현이 나온다는 거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불어닥친 뮤지컬 바람 때문에 레베카를 관람하러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안도 타다오가 건축했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LG 아트센터에 가보게 되었다.
역시 그의 시그니처인 타공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시멘트 벽체와 기둥, 기하학적인 공간 구성.
그러나 소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모아져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설계한 극장.
뮤지컬 레베카에는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격인 이히(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사실, 이 제목으로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긴 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존재하고,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이 아이러니함이라니.
두근두근 기대하며 공연의 막이 올랐다.
막심의 류정한은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극을 끌어갔고,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감탄하며 들었고.
댄버스의 장은아는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내가 상상했던 댄버스의 모습을 딱 맞는 모습으로 그려주었다. 그래서 끝나고 역시 짱댄이 짱이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또, 반 호퍼 부인역의 윤사봉의 유쾌한 연기에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가 한 번씩 즐거워져서 참 좋았다.
한 곡 한 곡 끝날때마다 멈출 수 없는 박수! 박수! 박수갈채.
레베카의 사운드나 배우들의 목소리가 더 좋게 느껴졌던 건, 공간이 주는 울림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 LG 아트센터 공연은 사운드는 믿고 간다!
단순하게 보면 레베카는 두 번째 여인(이히)을 사랑한 남자와 첫 번째 여인(레베카)을 못 잊는 집사와의 갈등이 빚어낸 참극 같아 보이지만,
나는 이것이 신-구의 대립과정에서 혹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누군가는 옛것을 잊지 못하고 그 실체 없는 망령에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투영하여 주변을 괴롭히는 법이니까. (극에서 댄버스는 레베카가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돌아보며 생각해보니, 나는 어떤 때에는 막심이 되었다가, 어떤 때에는 이히가 되었다가, 어떤 때에는 댄버스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무언가 시작할땐 싹 다 불태우고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오라방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싹 다 치워버리고 다음에 올 사람(?)에게 나의 흔적을 느끼지 않게 해 주라고.
그러나 집에서 돌아보니 지울 수 없는 나의 흔적들이 너무나 많은 것....
아무튼 이번 레베카는 10주년 기념 앙코르 공연인데, 마지막 공연이 2024년 2월 24일이고,
마지막 티켓 오픈일이 1월 18일이라고 한다. 놓치지 마시길!
https://ticket.melon.com/performance/index.htm?prodId=20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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